[메디칼타임즈=이지현 기자] 최근 1년 새, 지역 내 굴지의 정신병원 5곳이 문을 닫았다. 이외에도 전국 정신병원 평균 10곳 중 7곳은 적자 경영을 이어가면서 간신히 버티고 있는 실정이다.
수년 째 이어져온 정신병원 의료급여환자 차별 정책과 더불어 지난 2020년 코로나19 이후 정신병원 입원실 병상 시설기준 변경 정책까지 겹치면서 최악의 경영난을 겪고있다.
■10인실→6인실 개선했는데…수가보전은 없다?
복지부가 정신병원 입원실 6인실 이하(침상 간격 1m)로 시설 기준 변경안을 시행한 것은 지난 2023년 1월. 대한정신의료기관협회가 집계한 바에 따르면 전국 정신병원은 리모델링 혹은 증축 공사비로 총 2561억원을 투입했다. 한 병원 당 평균 9억원의 비용이 발생한 셈이다.
시설 공사비용도 문제지만, 병상이 감소한 만큼 병원 수익 감소로 이어진 것도 문제다. 정신의료기관협회는 약 1500억원이 감소할 것으로 집계했다.
기존에는 약 6만 2000병상 규모였지만 시설개선 이후 5만 2886병상으로 약 9114병상(14.7%) 줄어든 데 따른 여파다.
지난 2020년, 시설 기준 변경안을 발표한 당시 복지부는 정신병원들이 병상개선에 적극 나서면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것을 고려해 수가보전을 해줄 것을 약속했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이렇다할 보전책은 없다는 게 정신병원들의 지적이다.
복지부의 약속(?)만 기다렸던 일선 정신병원들은 입원실 리모델링을 위해 무리하게 받은 대출금을 감당하지 못하면서 급기야 문을 닫기에 이르렀다.
지난해 정신의료기관협회가 남인순 의원, 신동근 의원과 공동으로 '정신병원 경영실태'에 대해 설문을 실시한 결과 34곳 중 25곳은 적자 상태라고 답했으며 16곳은 직원 급여지급을 위해 외부 자금을 차입하고 있다고 답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현재 상황에서 앞으로 병원 운영이 가능한 기간은 '5년 이내'로 봤다는 점이다. 특히 병원 10곳 중 4곳은 '3년 이내'라고 답해 심각성을 알렸다. 이는 총 283개 정신병원을 대상으로 설문을 실시, 34개 병원이 응답한 결과다.
이를 전체로 환산하면, 전국 정신병원 283곳 중 117곳(41.2%)이 3년 이내에 문을 닫고 158곳(55.9%)이 5년 이내 폐업한다는 계산이다.
정신의료기관협회 강지언 회장은 "복지부는 정신병원들이 선도적으로 병상 기준변경안에 따라준다면 23년 1월부터 수가보전 대책을 반영해주겠다고 거듭 약속했다"면서 "공식적으로 발표한 사항이기 때문에 의심의 여지가 없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 결과 5월 기준, 제이미주병원, 수원우노병원, 서수원병원, 천안희망병원 등 5개 병원은 문을 닫았다. 병상 개선 등 리모델링을 위한 대출금을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각 지역 굴지의 정신병원들이 줄도산을 시작하면서 일선 정신병원들은 정신의료기관협회를 향해 "복지부가 약속한 수가보전책은 언제 나오느냐"는 문의가 쇄도하는 실정이다.
강 회장은 "근근이 경영을 유지해 오던 정신병원이 병상 기준을 맞추려고 대출을 받아 진행했던 것은 정부의 수가보전책을 믿었기 때문"이라며 "일선 정신병원들의 원성이 극에 달했다"고 말했다. 강 회장은 당시 복지부가 약속한 정신병원 (의료급여)환자에 대해서도 '동일 진료=동일 수가' 를 적용해줄 것을 요구했다.
■의료급여 환자 비중 높은 정신병원 경영 '한계점'
사실 정신병원의 경영난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이는 정신질환자에 한해 적용되는 '정액수가제' 때문.
정신질환자에 대해 정액수가를 적용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79년. 당시 정신과 의료급여 재정이 급증했다는 이유로 정신질환에 한해 '정액수가'를 적용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지난 2008년~2017년까지 정액수가를 동결하면서 의료급여환자에 대한 차별이 극대화됐다. 건강보험 보험 환자 대비 52%수준까지 떨어지면서 정신병원들의 살림은 갈수록 쪼그라들었다.
정액수가에 포함되는 항목은 진료비, 입원비, 식대, 정신요법, 투약료, 검사료 등. 심지어 식대까지 정액수가로 제한하면서 건보 환자와 의료급여 환자간 밥값에서도 차별을 받기에 이르렀다.
강 회장은 "정액수가는 마법 같다. 신설되는 모든 수가는 정액수가로 흡수시켜 버린다"라며 "그렇다고 해당 수가를 인상하는 것도 아닌데 일괄 묶음수가로 적용하니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건보환자와 급여환자에 따라 밥값을 차별하는 국가는 없다. 이는 환자 인권적 측면에서도 문제가 심각하다"면서 "의료급여환자의 밥값이 3990원으로 제한한 것은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끝이 아니다. 정부는 올해 1월부터 폐쇄병동집중관리료 및 격리보호료를 신설, 적용하면서 의료급여 정신질환자는 또 한번 차별을 받게 됐다.
복지부는 내과, 소아청소년과, 정신건강의학과 등 3개과에 진료비 가산(30%) 폐지에 따른 보상으로 폐쇄병동집중관리료와 격리보호료를 적용했다.
정신병원 건강보험 환자는 해당 수가 적용을 받을 수 있지만, 문제는 정신병원 상당수 환자가 의료급여 환자라는 점이다. 정신의료기관협회는 정신병원 폐쇄병동 입원환자의 70%가 의료급여 환자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정신병원들은 건보 환자와 의료급여환자의 동일 수가 적용을 요구하고 있다. 사실 '동일 진료=동일 수가'는 정부가 정신병원 시설 기준 개선 논의할 당시 수가보전책으로 언급된 내용.
강 회장은 "정부가 단계적으로 지원대책을 제시해주면 버틸덴데 수년 째 대책 없이 버텨야 하는 상황이다보니 하나 둘 문을 닫아가는 상황"이라며 "일선 정신병원들의 연쇄 도산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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